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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가지 편벽됨 : 신학월보 (190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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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3년 9월호 제3권 제9호 389-395면에 실린 이승만의 '두 가지 편벽됨'


나는 하나님의 모든 은혜를 다 감사히 여기는 중에 한가지 가장 간절히 감사하게 여기는 바는 다만 하나님의 교가 이 세상에 제일 가난하고 하찮고 괴롭고 악하고 우환고초(憂患苦楚)가 있는 곳 마다 특별한 효험이 되는 일이라. 나는 이것을 가장 감사히 여기며 성경의 모든 말씀을 알아듣는 것은 다 지극히 옳고 지극히 간절한 줄로 믿되 그 중에 더욱 간절히 감동되는 것은 세상에 환자가 있는 고로 의원을 쓸 때가 있느니라 하심이라. 이것은 다 사람의 개인의 뜻으로는 나올 수 없는 말씀으로 믿을지라. 


대게 세상 사람의 마음은 항상 부유하고 존귀한 자를 먼저 돌아보는 고로, 부자나 세객(勢客)은 보러 다니는 것이 많으나 걸인이나 종을 따라 다니는 일이 많지 아니하며 세상 사람이 보기에 지혜도 있고 옳은 일도 한다는 사람은 남이 도와주려고도 하며, 가라치기도 하건만 악하고 바린 사람은 함께 말도 하기를 싫어하나니, 이는 사람의 같은 성품이거늘, 하나님의 가르침은 [천도(天道)]는 홀로 그렇지 아니하여 사람이 버리는 것을 취하며 사람이 천하게 여기는 것을 높이며 가장 악한자를 먼저 가르치나니 이러함으로 천하고 가난하고 어려움에 처해있는 [간곤(艱困)] 사람이 속히 감동 받고 변화[감화]하며 어지럽고 위태한 나라일 수록 교회가 흥황하는 이치라.


이러므로 사람의 극히 어려운 지경은 곧 하나님이 감화시킬 기회라 하나니, 예컨대 논에 물이 마르고 뜨거워 고기가 살 수 없게 된 후에야 스스로 새 물길을 얻어 강과 바다를 찾아 갈지라. 만일 그 물이 어지간히[적(適)히 견]딜만하면 잠시 편한 것을 취하며, 새로 괴로움을 싫어하여 끝내[종시] 그곳을 면치 못하다가 큰 가뭄[대한(大旱)]을 만나면 마침내 마른 고기로 저자의 드러냄을 면치 못할지라. 이 세상은 우리가 잠시사는 논과 물이라 적히 태평 안락한 데에 사는 사람들도 바다같이 영원히 마르지 않을 살 길[생방(生坊)]을 찾기에 게을러지지 않거든 하물며 이 물이 마르고 흙탕이 되는 도탄중에 들어 있으면서 어찌 새 물줄기를 찾지 아니하리오. 


대한 사람들의 새 물줄기는 예수교회라. 이 교회가 날로 흥왕함은 더 말할 것 없으려니와, 아직까지도 저 불쌍한 사람들에게 다 기회를 주어 우리와 같이 생활 샘으로 나오지 못하게 함은 슬프도다. 우리의 믿음이 부족함이오. 사랑이 부족함이라. 마땅히 이 뜻을 더욱 널리 알도록 전파하여야 될 터인데 이 뜻을 전파하기에 두가지 장해(障害)가 있으니 하나는 정치상에 조급히 생각함이오. 하나는 교화에 편벽되이 주의 함이라. 


정치상의 조급한 생각을 말하건대 우리가 항상 일컫기를 대한의 장래는 예수교에 달려다 한 즉, 듣는 사람들이 혹 헤아리되 그 교회에 들어가면 곧 정사(政事) 바로 잡히고 나라의 문명되는 도리가 있는 줄로 알고 들어갔다가 사면을 돌아본즉 모두 복음을 어찌 전파하며 사람을 어찌 교육 시킬 일로 의논하고 있고 정사가 어떠하며 법률이 어떠함을 논란하는 자는 별로 만나기 어려운지라. 이에 자기가 나서서 팔을 뻗치고 고담준론(高談峻論)을 빼어낸 즉 모두 대답하되, 부질없는 말을 말라, 우리는 듣기를 원치 않노라 하는 지라. 그 연고를 캐어보지 아니하고 곧 돌아서 물러나 발하되 그들 중에도 아무뜻이 없고 다만 종교[교(敎)]에만 혹할 뿐이니 대한 장래가 달렸다 함이 불과 사람을 속임이로다 하나니 이는 교회의 효력과 국민의 마음 상태[정형(情形)]는 생각지 못하고 하루만에 일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자[일조일석의 사단의 생기기를 경영하는 자]이니 이것이 한가지 흠이오.

 

교회의 편벽되게 주의하는 자로 말할진대, 우리가 항상 말하기를 나라를 진실로 위하여 일하고저 할진데 교회의 일로 힘쓰는 것 만한 일이 없느니라 한즉, 듣는 자 혹 생각하기를 이 중에서 일하면 곧 무슨 효력이 있을 줄로 알고 이것저것 부질없이 애써보다가 하나도 자기의 뜻과 같지 않은 즉 필경은 또 낙심하여 헤아리되 이 나라에서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는 즉 다 생각지 말고 내 한 몸[일신]이나 돌아보아 교회 중에 육신의 평생을 부탁하여 가지고 세상 일들[시비]에 상관하지 말며 믿음으로서 일후에 영원한 복이나 구하리라 하여 전국동포가 다 죽을 고초를 당하였다 하여도 조금도 마음을 움직이지 아니하며 일국 강토가 어찌되든지 알 수 없다 하여도 들은체 아니하며 다만 기도하는 말은 나의 몸을 구제 하소서, 나의 집안과 부모 처자와 친척 친구에게 복 많이 주소서 할 뿐이라. 이 어찌 예수의 뜻[본의]이며 하나님이 기뻐들으시는 바이리요. 이는 이른바 교를 편향되게 인식 함이라.[편벽되이 주의함이라] 


이상 두가지는 다 널리 생각하지 못한데서 생김이라. 그 두가지 연결 안되는 [통치 못하는] 뜻을 대강 설명할 진대 대게 예수교는 이 세상을 변화[화]하여 천국같이 기쁘고 사랑하고 자유하는 복된 땅[복지]을 만들어 그 안에 사람이 하나도 구원 얻지 못하는자 없으며 하나도 복얻지 못하는자 없도록 하는 것이 그 모두 염원하는 결과라. 그러므로 이 효력이 미치는 대로 완악한 자 유순하여 지며 패악한자 인자하여지며 어두운 곳이 밝아지며 근심하는 곳이 즐거워 지나니 온 천하가 필경 다 변화[변하고 화]할 것이니 하물며 나라의 부패함과 사람들의 부도덕성[인심의 패리함]을 어찌 고치기 염려하리오. 그런데 이것은 교회의 힘으로 자연히 변화시켜[화하여]야 할 것이지 만일 다른 힘을 빌려 속히 자라기를 도모하면 그 변화[화]하는 것이 오래가지도 못하려니와 항상 폐단이 따라다니니 자고로 천주교의 무수한 폐가 생김이 다 이 때문이었다. 


이러므로 예수교회에서는 정치와 교화(敎化)를 특별히 구별하여 혼잡되는 폐단이 없도록 만들었으며 겉 보기에는[외양은] 서로 도움이 없는 듯 하나 실상은 피차에 다 편리하고 서로 돕게 되는 것[유조함]을 즐거워 하나니 이는 교회에서 마땅히 정치상 관계를 가까이 아니할 근본이라. 그러나 정치는 항상 교회본의로서 딸려 나는 고로 교회에서 감화한 사람이 많이 생길수록 정치의 근본이 스스로 바로 잡히나니 이러므로 교화로서 나라를 변혁하는 것이 제일 순편하고 순리한 연유니라. 이것을 생각지 않고 다만 정치만 고치고자 하면 정치를 바로 잡을 만한 사람도 없으려니와 설령 우연히 바로 잡는다 할 지라도 썩은 백성 위에 맑은 정부가 어찌 일을 할 수 있으리오. 반드시 백성을 감화시켜 새사람이 되게 한 후에야 정부가 스스로 맑아질지니 이 어찌 교회가 정부의 근원이 아니리오. 


하물며 대한은 지금 인민의 마음이 모두 썩고 상하여 어찌할 수 없는 중에 더욱 이기적인[사사] 마음이 가득하여 서로 해하고 서로 먹기로 곧 사람의 떳떳한 도리로 삼으며 남을 속여 몰아 넣기로 곧 재주로 삼나니 이중에서 무슨 일을 경영하며 설령 몇몇 합의하는게 있기로 무슨 일이 성취되기를 바라리오. 헛된 담론으로 세상을 경동하여 실상 일에 방해 뿐이니 헛것을 다 버리고 한둘씩이라도 사람을 화하여 변하게 만드는 것이 곧 그 나라를 위하여 큰 돕는 사람 하나를 만듦이라. 이것이 참 나라를 위하여 일함이니 마땅히 뜻으로 서로 찬조하여 열심으로 일하되 결단코 남을 위태롭게 하며 내 몸이 위태할 일로 일호도 실효는 없고 사회에 도로 해될 일은 결단코 행하지 말것이오. 


저 편벽되이 교회로 일신의 이익을 만들려는자 인즉 또한 이기심[사사뜻]에 병이 든지라 어찌 나의 구원얻는 것만 풍족히 여겨 남의 화복안위(禍福安危)를 돌아보지 아니하리오. 하물며 우리 몸이 육신으로 태어났음으로 우리들이 살아 있는 동안은 이 세상을 위하여 일을 아니하지 못할 지라 예수는 우리를 대신하여 돌아가시니 이는 세상을 구원하심이라 우리가 남의 환란질고와 멸망함을 돌아보지 아니할진대 우리의 믿음[신]은 어디에 있으며 우리의 일은 어디에 있으리오. 마땅히 세상을 생각하며, 나라를 생각하며, 이웃을 생각할지라. 적으나 크나 남을 위하여 일하는 것을 보아야 그 사람의 믿음을 알지니 열매가 없으면 어찌 그 나무가 쓸데 있다 하리오. 한마음으로 일어나 부지런한 일꾼들이 되어야 할지니 지금은 우리의 할 일은 씨뿌리는데 있는 지라. 복음의 좋은 씨를 바삐 바삐 사람의 마음에 심어 줄지어다. 


1903년

이승만


신학월보는 한국최초의 신학(神學)잡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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