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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마도(對馬島)를 내놓으라!” [허창식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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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창식 /국토회복운동 대표



1. 대마도는 역사적으로나 민족적으로나 우리 고유의 영토이다.

역사적이라함은 왜곡할 수 없는 근거가 지금도 대마도에 그대로 담겨있기 때문이며 민족적이라함은 지금도 거주하고 있는 주민 2~3천명의 혈액 DNA가 본토인들과는 달리 우리민족과 100%가 동일한 한국인들이기 때문이다. 또한 대마도란 이름도 신라 삼한시대의 마한(馬韓)과 마주보고 있는 곳이라하여 붙여진 이름이며 삼국시대 이전부터 조선이 관리하던 땅으로 매년 우리조종에 조공을 바쳐왔으며 간혹 배신할 때는 징벌하면서까지 관리하여오던 곳이었다.(세종원년 1494년엔 세종이 이종무 장군을 보내 다시는 배반하지 못하도록 항복 문서까지 받아왔었다.) 그러나 조선이란 나라가 끝없는 四色 당파싸움으로 분열이 되었고 임진왜란 같은 외환을 당하면서 국력이 쇄해진 틈을타 日은 불법으로 점거하여 지금까지 주인행세를 하고 있는 곳이다.

2. 대마도의 중요성

대마도는 일의 본토 규수 지방과는 130km떨어져 있으나 부산과는 49.5km로 한시간내로 배로 갈수 있는 지척에 있으며 해양성의 온화한 기후로 어종자원이 풍부하며 대륙봉의 장점을 모두 안고 있어 지하자원의 보고인 곳이다. 또한 군사적으로는 일본이 대륙으로 뻗어나가는 교두보에 위치해있어 대륙으로 진출하는 관문 역할을 하고 있는 중요한 곳이다. 일본이 자랑하는 1904년 러일전쟁의 승리로 대마도의 지리적 장점을 최대로 활용하였음으로 당시 최강의 러시아의 극동함대를 수장시킬 수 있었던 것이다. 이 승리로 일본은 간(肝)이 부어 잠자는 호랑이 미국에까지 도전하였다가 패전하게 됨으로써 결과적으로 우리에게 해방을 가져다 주는 우리에게는 너무도 고맙고 감사한 땅이 對馬島인 것이다.

3. 단군이래 최초의 선전포고

이승만이 대한민국의 초대대통령이 된 것은 우리 민족에 대한 축복이 아닐 수가 없다. 이승만은 긴긴 세월 일본에는 쫒기고 미국에는 견제를 받으며 또한 한민족간에는 시기와 질투를 받으면서도 불사조같이 일어나 결국 이승만은 건국대통령이 된다. 동양인 최초로 美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을 때 각 대학의 교수자리를 제의 받았다. 그도 사람일진데 편히 쉬고 싶은 생각이 왜 없었겠는가. 더구나 한성감옥의 고문의 후유증으로 평생을 시달리면서도 그래도 그가 많은 유혹에서 벗어날 수 있었음음 오직 새로운 나라 자유 대한민국을 건국하겠다는 사명감때문이었다. 그래서 萬難의 고난을 딛고 일어서서 건국대통령이 되었을 때 제일 먼저 경우도 없고 국제적인 예의도 없는 야만족 일본에 대하여 단단히 경고하게된다. “일본은 지금까지 불법 점거하고 있는 신성한 영토 우리땅 대마도를 즉시 내놓으라!”는 것이었다.

이 말은 일본에 전국을 순시간에 얼어붙게 만드는  비수의 한마디였다. 그간 우리가 천번에 가까운  왜침을 받아온 반만년 역사속에서 처음으로 공포한 최초의 선전 포고이기도 하였다. 전쟁은 국력의 싸움이지만 국력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명분이다. 이승만은 일본에 이길 수밖에 없는 비장의 무기, 뚜렷한 명분을 가지고 있었다. 일본이 36년간 불법강점을 하고 있는동안 조선사람으로 제일 많은 현상금을 걸면서도 못잡아들였던 이승만인데 그가 마침내 살아서 대한민국의 초대 대통령이 되었으니 얼마나 일본은 긴장하였겠는가. 그런데 그가 一聲으로 내놓은 말이 그들의 정곡을 찌르는 비수의 이 한마디였으니 얼마나 긴장하였겠는가.


4. 무슨 근거였는가.

일본은 1700년도 초에 영토문제로 미국과 분쟁을 하고 있었다. 그것은 일본에서 약 천km떨어져있는 3~4개의 작은 섬이 모여있는 「오가사와군도」에 대한 영유권 다툼이었다. 이 곳은 독립 이전부터 미국이 소유하고 있던 곳이었는데 계속 일본이 자기네 땅이라고 주장을 함으로 결국 국제사법심판소에 제소하게 된다. 이때 판단한 기준이 어느 쪽이 더 정통한 역사적인 근거를 제시하느냐하는 것이 관건이었는데 日이 제시한 근거가 1786년 일학자 林子平가 저술한 삼국통람도설(접양지도)이었다. 이 지도는 당시 권위있는 독일의 역사학자 「클라프로토」도 공인한 것으로 美는 이에 미치지 못하였기에 이 지도 한장 때문에 어쩔수 없이 美영토가 日本으로 바뀌게 되었다. 그런데 이 지도에 문제의 대마도(쓰시마)가 조선령으로 나와있는 것을 이승만은 유학시절에 이미 알고 있었던 듯하다. 그래서 지금까지 ()로 당한 것을 말()로 받아내려고 권좌에서 물러나기까지 무려 60여차례나 추궁하였으니 로서는 가히 그로기(groggy)상태였을 것이다. 그러나 그 큰뜻을 다 이루지 못하고 가셨으니 그 나머지는 우리 後代의 몫이 되어 지금까지 내려오고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5. 城東擊西

손자병법에 나오는 말로 '적이 쪽을 치려는 것같이 바람을 잡다가 방심한 틈을 타 西쪽을 친다'라는 뜻이다. 이승만의 퇴진으로 이 겨우 정신을 차리게 되자 다시는 한반도에서 이승만의 망령이 되살아나지 못하도록 하겠다고 대못을 박을 결심을 한다. 장고 끝에 그들이 묘수라고 내놓은 것이 2004년도에 공포한 성동격서 즉,賊反荷杖의 악수였다. “다께시마는 우리땅이니 순수히 내놓으라는 것이었다. 즉 물타기 작전인 것이다. 처음엔 인들 조차도 동조한 사람이 미비하였고 반응들이 냉담하였다. 그러나 계속 홍보도 하고 국가가 나서서 장려하고 어용학자도 동원하고 교과서에까지 실린다. 급기야 총리까지 나서 국가적인 행사로 주도한 결과 오늘날은 90%이상이 동조한다고 한다. 이 상태대로 간다면 오가사와군도 같이 우리 독도도 빼앗길 날이 멀지 않은듯하다.

이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는 더욱 한심스럽다. 뭐에 질렸는지 한마디 대응도 못하고 있을뿐만 아니라 홍보용으로 한다는 독도는 우리땅이라는 노랫말 조차도 대마도는 몰라도 독도는 우리땅이말 같이 독도는 모른다는 말이 되는가. 이러한 역사도 모르고 근본도 모르고 주체의식도 없이 오늘도 노래를 따라부르고 있다. 오히려 의 야욕을 부추기고 정당화시키고 있는 철없는 창피한 일들이 아니겠는가. 우리는 국제사회가 얼마나 냉혹하고 엄격하며 비참한지를 그렇게 겪어봤으면서도 아직도 모르겠는가.

지금 우리의 소중한 것들은 우리가 이루어놓은 것들이 아니다. 우리의 선조들이 피와 땀으로 지켜주시고 물려주신 유산일 뿐이다. 더욱 소중히 가꾸고 지켜서 후대에게 고스란히 물려주어야할 우리의 의무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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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보248호<조선방역지도 >. 현재 전해지는 조선 전기 국가제작지도로는 유일하다.(출처: 김화홍의 '대마도는 한국땅')

'백두는 머리, 태백은 척추, 영남의 대마도와 호남의 탐라를 양발로 삼는다'는 기록대로 당시 국토관을 한눈에 보여주는 지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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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50년대 제작한 <해좌전도 >의 대마도와 울릉도 부분 (출처: 김화홍의 '대마도는 한국땅')

울릉도 옆에 독도까지 기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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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마도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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