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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와 이승만-프란체스카의 난중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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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체스카 여사의 시선으로 바라본 한국전쟁의 기록 『6.25와 이승만』. 오스트리아 태생의 프란체스카 여사는 대한민국 건국 대통령인 이승만 박사와 1934년에 국제결혼을 하였다. 이 책은 1950년 6월 25일부터 중공군 개입 이후 유엔군이 37도선으로 철수하여 재반격을 시작하는 1951년 2월 15일 상황까지를 다룬다. ‘중앙일보’에 프란체스카 여사의 이름으로 ‘6ㆍ25와 이승만 대통령’이라는 제목으로 113회에 걸쳐 연재된 이 글은 전쟁의 핵심에서 전쟁을 수행했던 이승만 대통령에 대한 기록을 담고 있다.

6ㆍ25전쟁에서 가장 극적이고 혼란하였던 시기에 이승만 대통령을 중심으로 국제관계, 한미관계, 군사문제, 전선상황 등을 다루고 있어 귀중한 전시 통치사료로 손꼽힌다.



<출판사 서평>

60주년 맞아 펴내는 귀중한 기록

올해는 6.25 한국전쟁이 발발한지 60년을 맞는다. 이 책의 원본은 이승만 대통령의 부인 프란체스카(Francesca Donner Rhee) 여사가 6.25 기간 중에 쓴 영문일기이다. 영문일기는 비망록(Confidential Notes) 또는 프란체스카 일기(Mrs Rhee Diary)로 통용되고 있다. 전쟁이 발발한 날인 1950년 6월 25일부터 중공군 개입이후 유엔군이 37도선으로 철수하여 재반격을 시작하는 1951년 2월 15일 상황까지를 다루고 있다.

프란체스카 여사는 국가위난의 전시(戰時)에 대통령과 경무대를 중심으로 일어난 국내외의 중요한 사건과 전쟁상황을 있는 그대로 솔직하게 기록했다. 그런 점에서 볼 때 이 비망록은 ‘대통령의 경무대 일지’나 다름없으며, 이승만 대통령의 ‘전시통치사료(戰時統治史料)’의 성격을 지니고 있다고 할 수 있다.

6.25전쟁이라는 특수한 전시 상황에서 프란체스카 여사는 이승만 대통령을 도와 그 능력을 더욱 발휘하게 되었다. 그녀는 마치 이승만 대통령의 입의 혀처럼 일처리를 잘해 나갔다. 6.25전쟁은 1950년 6월 25일 북한군의 기습남침으로 개시되어 1953년 7월 27일 휴전이 성립될 때까지 만 3년 1개월 이틀 간 계속됐다. 그 동안 쌍방은 38도선을 각각 3회씩이나 넘나들면서 남으로는 낙동강, 북으로는 압록강까지 오르내리며 전 국토의 80%에 달하는 지역에서 전투를 전개했다.

우리의 입장에서 기록한 ‘우리의 전쟁’

프란체스카 여사의 6.25전쟁 비망록은 6.25전쟁을 연구하는데 있어서 없어서는 안 될 매우 소중한 자료다. 특히 6.25전쟁에서 가장 극적이고(인천상륙작전ㆍ중공군개입), 가장 어렵고(서울철수ㆍ낙동강방어), 가장 혼란한 시기(부산 피난ㆍ1.4후퇴)에 이승만 대통령을 중심으로 국제관계, 한미관계, 군사문제, 전선 상황 등을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이 자료의 가치를 더욱 높이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6.25전쟁이 한국에서 일어난 우리의 전쟁이라는 점에서 우리의 입장을 가장 잘 알 수 있고, 또 전쟁의 핵심에서 전쟁을 수행했던 이승만 대통령에 관한 기록이라는 점에서 이 자료는 그 가치를 더욱 신뢰받을 수 있을 것이다.

30년 전 발표되어 책으로는 첫 출간

전시 이승만 대통령의 영문 일기체 형식의 6.25전쟁 비망록은 프란체스카 여사에 의해 휴전이후 50년 뒤인 1983년 지상에 뒤늦게 공개되었다. 또한 이 시기는 이승만 대통령이 서거한지 약 18년이 지난 시점이었다.프란체스카 여사는 1965년 이승만 대통령 사후(死後) 오스트리아 친정집에서 있다가 뒤늦게 한국으로 돌아왔다. 이후 프란체스카 여사는 1983년 6월 24일부터 중앙일보에 비망록을 바탕으로 ‘6.25와 이승만 대통령’이라는 제목의 글을 연재했다. 113회에 걸쳐 연재된 글은 절체절명의 위기상황에 대처하는 이승만 대통령의 확고한 의지가 생생하게 드러나는 등 그때까지 몰랐던 6.25에 관한 새로운 사실이 소개됨으로써 독자들의 큰 관심을 끌었다. 이번에 6.25한국전쟁 60주년을 맞아 당시의 글을 다시 정리하고 내용을 보완하여 책으로 펴낸다




<목 차>
머리말을 대신하여

제1부 기습남침과 대통령의 초기 대응

대통령의 서울 사수 의지
배를 타고 부산으로 피난
‘자유중국’의 파병제의 거절
빨갱이 세상으로 바뀐 서울
기동순찰 오토바이 따돌린 운전 솜씨
카투사 제도의 시작
채병덕 장군의 전사
“죽창으로 적을 막겠다!”
꼬마들과의 팔씨름

제2부 낙동강 방어선에서 대통령의 역할

친정에서 보내온 격려편지
겨우 구해 발라보지도 못한 땀띠약
실종자 속출하는 미 24사단
“꿈속에서 대통령이 나를 쏘았다!”
오랜만에 진해에서 단잠을 자다
부산 수도 기습발표
군악대 환영받은 경무대 요리사
낚시 즐기다 경비병에 쫓겨나
종군 미국 여기자와 인터뷰
낙동강 저지선 붕괴
밤새 쓴 37통의 편지
고당(古堂)이 있었더라면......
병역기피 꾀하는 고위층 아들들
한심한 국회의원들
인천상륙작전

제3부 서울 수복과 대통령의 북진통일 행보

헬렌 킴의 신발에서 튀어나온 개구리
“국군이 먼저 중앙청에 태극기 게양하라!”
이제는 마음 놓고 추수하게 됐어!
우리나라 국경은 압록강과 두만강
돌아온 애견 ‘해피’
제네바에서 만난 ‘동양 신사’
백선엽, 인엽 형제
장미 한 송이로 결혼기념일 선물
쑥밭이 된 이화장
술 즐기는 시인 김 비서
“나는 통일의 광신자이다!”
평양 입성으로 축제 분위기
소설가 친구 구하러 가겠다는 시인 비서
미국을 불신하는 북 주민들
장작 패며 울화를 달래다
미군 허가 받으라는 대통령의 원산 시찰
평양시민의 열렬한 환영받은 대통령
끊어진 한강철교 재개통
6년 만에 이어진 서울과 평양 전화
대통령의 자주독립노선 헐뜯는 미국
판치는 가짜 경찰, 가짜 군인
압록강 얼어붙자 중공군 인해전술
중공군에 원폭투하 검토
“무기가 없으면 낫이라도 들겠다!”

제4부 1ㆍ4후퇴와 대통령의 고군분투

맥아더의 기자회견에 실망
“다시는 서울 떠나지 않겠다!”
파면설 나도는 맥아더
각료들 훈계한 대통령
미8군의 제주도 피난계획
한국 적화되면 일본과 필리핀도 위험
미국, 원화 평가절하 압력
골치 아픈 외국기자들
“리지웨이 사령관 임명은 맥아더 견제용”
소꿉친구의 간청마저 거절한 대통령
맨손 대통령에 달군 조약돌 선물
평양 사과는 손님 접대용
경무대 뒤뜰에 놓인 장독대
생선은 머리 부분, 소는 꼬리 부분
천국행 티켓 품고 서울 사수 결심
중공군 인해전술 막을 원자탄
남행 비행기는 타기 싫다
대통령의 자작시 ‘빈대’
경무대 후송차량에도 피난민
국난 때는 부녀들이 맹활약
온 국민에 항전 독려
권력층과 부유층의 일본행 신청 러시
한국은 아시아의 열쇠다!
여성단체 궐기대회
“50만 명분 무기 달라!”
여섯 살에 천자문 뗀 대통령
전선에서 자취 감추는 중공군
14살에 죽은 외아들

제5부 통일 향한 대통령의 집념과 열정

빨리 38선을 넘어라
양말, 내의 꾸려 장병들에게
양력설 쇠기 캠페인
미주리함에 올라 감회에 젖은 대통령
대통령 별명은 ‘통일병 환자’
직선제 헌법 개정과 통일 성취
북진 제동에 격노한 대통령
‘국난 극복일’ 제정 건의

연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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